books2004. 6. 3. 10:06


참 냉소적이다.. "울 준비는 되어 있다"를 읽으면서 울 준비라고 말하기 보다는 이미 울 눈물이 매말라서 마음은 울고 있더라도 겉으론 울 준비보다는 "그래.. 그렇지" 순응하는 역설적인 제목인듯.. 읽는데 3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짧은 소설속에서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슬픔에 난 이미 동화되었다..


yes24의 blur182 님의 글입니다.

에쿠니 가오리를 세번째로 만나는 작품이었습니다. 처음은 그 유명한 냉정과 열정사이의 로쏘, 두 번째는 낙하하는 저녁이었지요. 이 책을 받아들고 많이 망설였어요. 언제나와 다름없이 화사하면서도 단아한 그녀의 사진(그녀의 인기에는 그녀의 외모- 정확하게는 한장의 사진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겠죠?)이 표지를 두루고 있는 이 책은, 작은 양장본의 판형도 그녀의 얼굴도 기존의 소설과 다를게 없었지만. 그렇기에 망설여졌습니다. 울 준비는 되어 있다, 라고 씌여있는 제목이 꼭 "(나는) 울 준비는 되어있다. 너는?" 이라고 묻는 것 같아서요. 그녀가 물론 신파는 아니지만, 아련하다고만 말하기엔 어딘가 직선적으로 눈물을 콕 끄집어 내는 면이 있잖아요. 그게 너무 두려워서. 싫은건 아니었지만, 어딘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고칼로리의)을 눈앞에 둔 다이어트 하는 사람의 심정이랄까요.

한참만에 용기를 내어 집어든 책은, 선입견과는 달랐습니다. 눈물을 흘리게 하는 이야기는 아니었으니까. 물론 슬픈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눈물이 식어버린 후의 남아있는 쓸쓸한 슬픔의 뒷맛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까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슬픔. 어느 순간 감정의 미묘한 변화가 오고, 그로 인해 슬프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푹 빠져 목놓아 울 수도 없는, 오후의 약속을 생각해야하고 혹은 내일 일찍일어나하니 빨리 자야하는데 혹은 울면 눈이 부을텐데 하는 식의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슬픔. 사실 그게 더 슬프잖아요. 아무리 슬퍼도, 아무리 가슴이 터질것 같아도 내일 일어나면 똑같은 해가 뜨고 세상은 돌아가고 우리들 자신조차 다시금 똑같은 세상에서 똑같은 템포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안다는 거. 그럴 수 밖에 없음을 아는 것.

굉장히 짧은 소설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작가후기에서 그녀가 밝힌대로 "온갖 과자를 섞어놓은 과자 상자가 아니라, 사탕 한 주머니"입니다. 그만큼 서로 조금씩 색깔은 다르지만 결국엔 같은 맛을 전해줘요. 가슴 한 켠이 스산해지고, 자꾸만 담배를 피고 싶고, 한숨이 나오고, 답답하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잔인한 소설이에요. 일상이 그러하듯이, 외면할 수도 없다는 점에서 더. 사람들은 참 이상하지요? 울 준비 따위는 할 생각도 하지 않고 사랑을 하고, 결국엔 세상 끝날듯 울다가도 다시 사랑에 빠지니. 그리고, 이렇게 힘이 빠져 버릴 것을 알면서도 기어이 이 책을 읽고 말았으니.


Posted by blueisl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