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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5.06 Lost in Translation
images2006. 5. 6. 23:45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 타인에게서 지친 영혼을 위로받기

<처녀자살소동 The Virgin Suicides>(1999)을 보지 못한 국내 관객들에게 소피아 코폴라는 <대부>, <지옥의 묵시록>의 명감독 프랜시스 코폴라의 딸이라는 정도로 인식되어 왔다. 그것도 <대부 3>에서 어색한 연기로 일관한 '프랜시스 코폴라의 연기 못하는 딸'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1999년 깐느 감독 주간에서 상영되어 호평 받고, 이듬해 선댄스 영화제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던 <처녀자살소동>을 연출한 재능있는 신예 감독이다. 그런 그녀가 4년 만에 두 번째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Lost in Translation>를 내놓았다.


할리우드의 인기스타 밥 해리스(빌 머레이)는 위스키 광고 촬영차 일본을 방문한다. 그는 일본의 낯선 문화와 환경에 둘러싸여 단절감과 소외감을 느낀다. 일본 CF 감독의 이해할 수 없는 요구와 겉돌기만 하는 아내와의 전화 통화. 한편, 결혼한 지 얼마 안 되는 어린 신부 샬롯(스칼렛 조핸슨)도 유명 사진작가인 남편(지오바니 리비시)을 따라 일본에 왔지만 일 때문에 바쁜 남편과 대화 한 번 나눌 시간이 없다. 또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고민한다. 낯선 여행지에서 인생의 공허함을 느끼게 된 밥과 샬롯은 호텔 바에서 만나 서로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숨겨진 외로움을 발견한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이해 받지 못하는 소녀들이 등장했던 <처녀자살소동>의 연장선상에 있다. <처녀 자살 소동>은 1970년대 미시간 주의 작은 마을에서 사는 다섯 자매의 이야기를 다루었었다. 다섯 자매는 교사인 부모의 엄격한 청교도식 교육에 0대의 자유를 억압당한다. 소피아 코폴라는 금발머리 다섯 자매의 싱그러운 젊음을 화면 가득히 담아내면서도 그녀들을 한없이 무력한 존재로 그려낸다. 그녀들의 부모는 폭압적이지는 않지만 부드러움으로 위장한 냉혹함을 감추고 있다. 거짓 화해와 위장된 평화 속에서 소녀들은 숨죽이며 살아간 그녀들을 짝사랑하는 마을 소년들의 구출작전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스스로의 묵숨을 끊는 것으로 삶을 마감한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서 소피아 코폴라는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길로 나아간다. 이해 받지 못하는 새내기 주부 샬롯은 외로움에 지쳐 있지만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밥과 소통한다. 밥은 중년의 피로와 권태에 빠져 있지만 자신의 삶을 돌볼 수 있을 만큼 성숙한 남자다. 밥은 아버지같은 자상함으로 샬롯의 지친 영혼을 어루만진다. 언뜻 보면 불륜이나 원조교제쯤으로 인식될 수 있는 둘 사이의 묘한 관계는 그러나 세대를 초월하여 진정한 인간적 유대감으로 형상화된다. 그건 소피아 코폴라가 그만큼 성숙해졌다는 의미이며 인생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밥 해리스를 연기하는 빌 머레이는 단순한 코믹 연기가 아니라 드라마 연기에서도 하나의 경지를 보여준다. 낯선 여행지에 중년의 피로와 삶에 대한 회의를 느끼면서도 그 삶을 아무렇게나 방치하지 않는 어른 된 자의 여유로움은 그대로 그의 나이에 맞춰져 있다. 샬롯 역의 스칼렛 조핸슨도 이제 갓 스무 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의 성숙한 연기를 보여준다


- nkino
Posted by blueisl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