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2004. 3. 25. 14:08


'춘생, 살아 있어야 해요' 춘생은 고개를 끄덕였고, 가진은 안에서 울면서 말했다네.
'당신은 우리에게 한 목숨을 빚졌으니, 당신 자신의 목숨으로 갚아주세요.'
춘생이 잠시 서 있다가 말했지.
'알겠습니다.'

'춘생, 자네 살아 있겠다고 약속하게.'
춘생은 몇 걸음 걸어가다가 돌아보며 말했어.
'약속할게요.'

위화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간결함, 평범함속에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를 담아내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고 하고싶다.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읽고 그의 소설을 풀어나가는 방법을 이미 한번 경험해 봤던 터라 "살아간다는 것"을 읽는데는 별다른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설레였다고 해야 정확할 것 같다.

살아간다는 것. 그것을 알려면 우리가 왜 태어났냐는 원론적인 질문을 먼저 해야할듯 싶다. 왜 태어났을까? 당신들은 알고있나? 혹시 한번쯤 가볍게 생각하다 집어치우진 않았나?, 나역시 이 소설을 읽고 나서야 내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를 가졌다.

위화 책 서문에서 말하는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란 살아있기에 살아간다는 것이다. 뭐 복잡하게 내가 태어난 거대한 사명이니 그런 거창한 말은 일절 사용치도 않고. 단순히 살아있기때문에 살아간다는 것이라는 말이다.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살아 있기에 살아간다는 것.

이 소설에 나오는 복귀노인의 회상기에는 그의 일생을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고 간결하게 묘사해놓았다. 정말 읽어가면서 욕도 하고, 눈물도 흘리고, 감동도 했다. 그냥 한 사람의 인생을 파노라마처럼 머리에 스치듯 경험해봤다고 해야하나? 책을 읽으면 토막토막 보는 내가 이책은 단숨에 읽어버렸다. 조금이라도 흐름을 놓치면 안될것 같은 그런 마력에.

삶의 풍파를 겪어 오는 복귀의 삶에서, 아무래도 그의 작은 행복들보다는 커다란 불행들에 초점이 맞춰지기 마련이다. 도박으로 전재산을 날리고, 딸이 농아가 되고, 아들이 수혈을하다 과다수혈도 숨지고, 딸이 출산하다가 죽고, 아내가 연골병으로 오래지않아 죽고, 사위도, 하나밖에없는 외손주도 죽어버리고. 마지막엔 자신 혼자만 남아있는상황.

자신의 피같은 인척들의 죽음을 눈앞에 지켜보는 이의 마음은 어떠할까. 그것도 한두번도 아닌. 전가족이. 기근을 버텨오고, 대혁명기를 거치며 살아오는 복귀노인의 풍파같은 세월속에 나 자신을 던져놓고 생각해보니.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사소한 걱정들이 저 넓은 백사장의 작은 모래알갱이처럼 생각이 드는건. 이 소설을 제대로 읽었다는 말일까?

살아간다는 건 쉬운일이 아니다. 하지만 살아만 있다면 살아간다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왜 이때까지 그 진리를 깨우치지 못했을까? 다시 한번 여화의 소설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Posted by blueisland